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야 문명 (문단 편집) == 식생활 == 마야인들은 [[옥수수]]. [[호박]], [[콩]] 등 다양한 작물들을 길러 먹었지만 개중에서도 가장 주로 먹었던 건 '''옥수수'''였다. 일단 옥수수는 마야 문명의 습한 기후에 잘 자랐을 뿐만 아니라, 보관하기도 편했고 가루를 내어 먹거나 반죽으로 [[토르티야]]를 빚어 먹을 수도 있었을 뿐더러 줄기나 뿌리로 바구니나 밧줄 따위를 만드는 등 여러 모로 유용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이었다. 어찌나 옥수수를 중요하게 여겼던지 신들이 옥수수 가루로 반죽을 빚어 인간을 창조했다고 여겼을 지경이었다. 옥수수 신은 마야 문명권에서 가장 중요하게 숭배되었던 신들 중 하나였으며 마야 사회는 기본적으로 옥수수의 성장과 수확을 바탕으로 돌아갔다. 옥수수를 먹는 방법은 다양했다. 그냥 다 자란 옥수수를 따서 구워먹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로는 옥수수를 석회가루와 함께 물에 넣어 끓이는게 보통이었다. 옥수수를 알칼리성 석회물에 끓이면 [[비타민 B]]가 나오는데, 이 비타민 B를 섭취함으로써 홍반병을 예방하고 단백질 결핍을 보충할 수 있었다. 석회 가루와 함께 물에 끓여낸 옥수수는 건져내서 말린 다음 곱게 가루로 빻았다. 이 가루는 반죽해서 화덕에 [[토르티야]] 비슷하게 구워먹는 것이 가장 보편적이었다. 반죽에 고기, 야채로 속을 채워 옥수수 수염이나 바나나 잎 따위에 싸서 구운 '타말'이라는 요리도 있었다.[* 타말은 잎 따위로 겉포장이 되어 있는 상태의 음식이었기에 운송, 보관하기가 매우 용이했다. 그래서 마야인들이 이동이나 여행할 때 매우 즐겨 먹었다.] [[수프]] 비슷하게 먹고 싶다면 '아톨'과 '포졸'이라고 해서 [[죽]]처럼 먹는 경우도 있었다. 아톨은 칠리 페퍼, 카카오, 소금 따위를 넣어서 간을 한 짙은 수프 형태의 요리였고, 포졸은 옥수수 가루에 물을 넣어 끓인 음 고기와 양파, 향신료 따위를 얹은 수프였다. 옥수수가 가장 메인 요리 재료였지만 콩과 호박 역시 매우 중요했다. 특히 이 둘의 경우 옥수수와 묶어서 '세 자매들'이라고 불릴 정도로 마야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다고. 이 3개가 가장 널리 재배되는 작물이었지만 그 외에 [[토마토]]. [[고추|칠리 페퍼]], [[아보카도]],[* 아보카도의 원산지는 멕시코 남부와 [[과테말라]] 지방이다. 마야인들은 아보카도의 부드러운 식감과 풍미 때문에 아보카도를 매우 귀하게 여겼다. 매운 고추와 양파, [[라임]] 주스와 아보카도 등을 혼합해 초기적인 형태의 [[과카몰리]] 소스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고 한다.] [[구아바]], 사워솝, [[파파야]], [[파인애플]], [[고구마]], [[카사바]]도 즐겨 먹었다. 개중 카사바의 경우 기르기도 쉽고 생산량도 꽤나 많아 옥수수 대용으로 먹는 사람들도 흔했다. 일부 학자들은 옥수수가 흉작이거나 양이 부족할 때 사람들이 카사바를 그 대용으로 먹지 않았을까 추정하기도 하지만 확실하진 않다. 일반적으로 사회적으로 고위층이거나 힘이 있는 사람일수록 옥수수를 많이 섭취할 수 있었다. 옥수수가 그렇게 부족한 작물은 아니었지만, 마야 문명권에서 아무나 먹을 수 있을만큼 풍부한 작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. 성인 남성이 여성이나 아이에 비해 더 많은 양의 옥수수를 소비했으며 식단에서 옥수수가 차지하는 비중도 더 높았다. 마야 도시 팍비툰(Pakbitun)에서 발견된 유골들을 동위원소 조사해본 결과, 팍비툰에 살던 보통 성인 남성 식단의 약 70~77%가 옥수수였다.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도시가 쇠퇴할 수록 옥수수가 식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면서 나중에는 거의 50~60% 수준까지 감소했다. 그 이유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주식인 옥수수가 농지 황폐화로 인해 연달아 흉작이 들면서 어쩔 수 없이 옥수수 말고 다른 식품들을 섭취해야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. 즉 인구는 자꾸 느는데 옥수수 생산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해 식량난이 가중됐고, 이 것이 사람들의 식단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의미다. [[파일:25331-Xocolatl-Spicy-Aztec-Hot-Chocolate_600x.webp|width=500]] 마야식 초콜릿 음료 '쇼콜라틀'. 칠리 고추와 옥수수, 꿀 등을 섞어 마셨다. '''마야 문명에서 유래한 가장 유명한 음식은 [[초콜릿]]'''이다. 마야인들이 우리가 아는 단단한 바 형태의 초콜릿을 먹은 건 아니지만[* 1500년대 [[스페인]] 침략자들이 카카오를 발견한 뒤 그 맛에 반해 유럽으로 카카오를 실어보냈고, 이후 17세기 중반에 유럽 전역으로 퍼지면서 기호에 맞춰 설탕 등이 첨가되며 현대인들에게 친숙한 단단하고 달콤한 형태의 초콜릿이 등장한다.] [[카카오]]의 원산지가 바로 이 마야 문명이 탄생한 메소아메리카 지방이기 때문이다. 고대 마야인들은 카카오를 재배한 최초의 사람들이기도 했다. 마야인들은 카카오를 '''신의 선물'''이라고 여겼다. 역사적으로도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필수적으로 사용하던 신성한 음식이었을 뿐더러 결혼식과 약혼식에서 카카오 음료를 마셨으며 화폐로 쓰기도 했다. 부유층들은 코코아 콩을 갈아 칠리 페퍼, 옥수수 가루, [[꿀]] 등과 섞어 '쇼콜라틀(Xocolatl)'이라는 독특한 음료를 만들어 먹었다. 아무나 함부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절대 아니었고, 귀족이나 신관 등 최고위 계급만 향유할 수 있는 최고급 사치품이었다. 오늘날의 [[코코아]]와는 다른 느낌의 음료로, 무가당 초콜릿에 거품을 좀 많이 낸 형태의 음료수였다고 한다. 마야인들도 당연히 [[고기]]를 좋아했다. 하지만 동물들을 길러 잡아먹는다는 개념보다는 여전히 사냥 중심의 육류 공급 방식에 의존했던 것으로 보인다. [[사슴]], [[매너티]], [[아르마딜로]], [[맥]], [[페커리]], [[원숭이]]. [[기니피그]], [[거북이]], [[이구아나]] 등 정글에서 잡을 수 있는 동물들은 죄다 잡아먹었는데, 그중에서도 가장 즐겨 사냥했던 동물은 흰꼬리 사슴이었다. 양도 많았고 정글에 사는 웬만한 동물들에 비해 맛이나 냄새도 훨씬 좋았기 때문. 해안가에 거주하는 마야인들은 [[바닷가재]]나 [[새우]], [[소라]] 같은 해산물들을 즐기기도 했다. 마야인들의 운반 기술이 열악했던 탓에 내륙 도시의 마야인들은 해산물들을 먹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.[* [[카라콜]]에서 일부 [[가오리]], 바다메기 등 해산물들의 흔적이 발견되긴 했지만 극소수였고, 그마저도 바다에서 강을 따라 겨우겨우 이동시킨 것에 불과했다.] 학자들이 마야인들의 유골을 분석한 결과, 가장 많이 먹은 동물은 역시나 흰꼬리 사슴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[[칠면조]] 같은 소형 조류나 작은 포유류들을 사육해서 먹기도 했다고 한다. 마야인들은 옥수수나 기타 작물들을 기를 때 '펫 콧(pet kot)'이라 불리는 형태의 농경지와 작은 정원을 이용했다. 하도 메소아메리카 지방이 비가 많이 내리다보니 기껏 만들어놓은 농지의 흙이 죄다 쓸려나가기 일쑤였고, 이때문에 밭 경계에 느슨하게나마 돌들을 쌓아 '느슨한 돌의 벽(kot)'을 만들었다는 데에서 '펫 콧'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. 마야인들이 주로 쓰던 농경 방법은 [[화전]]이었다. 정글이 '녹색 사막'이라 불릴 정도로 농사 짓기에는 썩 좋은 환경이 아니다보니 어쩔 수 없이 열대우림을 태워서 그 재를 비료삼아 농사를 지었던 것이다. 보통 한 번 숲을 불태우면 그 효과가 2년 정도 갔다. 하지만 2년이 지나면 지력이 다해버렸고 해당 농지는 우림이 복원되고 지력이 복구될 때까지 무려 10년이나 사용이 불가능했다. 그러면 그 옆의 우림을 또 태운 다음 거기에 새로 작물을 심는 일종의 [[윤작]]을 실시했다. 여담이지만 이 화전농법은 훗날 자연환경의 변화로 가뭄과 자연재해가 일어나면서 10년이 지나도 지력 복구가 안되자 식량 생산량의 급격한 감소로 이어졌고, 결과적으로는 마야 문명의 쇠퇴를 불러오는 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